혜문칼럼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은 노무현 때문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말기 사람들은 제 잘못을 다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축구에서 져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고, 연예인이 이혼해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2007년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었을때, 방화범 채종기란 할아버지도 왜 숭례문을 불질렀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기 소유의 토지를 노무현이 조금밖에 보상해 주지않아서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고 그는 떳떳하게 말했다. 그 말 뒤에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숭례문은 소실된 뒤 5년만에 다시 복원되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뜻밖에 단청이 벗겨지고 기둥이 갈라지는 등 부실논란에 휘말렸다. 일본산 화학안료를 쓰고, 덜 건조된 나무를 사용했으며,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느라 부실복원이 되었다는 갖가지 주장이 가중되었다. 문화재청장은 부실복원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철저한 조사와 오류 시정을 약속했다.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였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오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출입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해방이후 대한민국은 일제기기 지정번호를 그대로 답습 숭례문을 국보 1호로 다시 지정햇을 뿐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국보 1호를 숭례문이 아닌 다른 문화재로 대체하고 싶어 했다. 아마도 대통령은 숭례문이 조선총독부에 의해 국보 1호로 지정된 이유를 알았던 것 같다. 2005년 감사원은 국보 1호 숭례문에 대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변경했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도 이를 긍정적으로 수락, 국보 1호를 변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대통령은 아마도 국보 1호란 명예를 훈민정음에 부여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 문화재위원회의 할아버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국보 1호의 변경은 혼란을 초래하고, 국보 1호는 중요성이 아니라 관리를 위한 지정번호이기 때문에 굳이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뜻밖에 대통령은 할아버지들의 의견을 존중, 덜컥 국보 1호 변경계획을 포기하고 말았다.

 

2007년 숭례문이 불탓을때, 국보해지 문제가 거론되었다. 조선시대 건축한 목조 부분이 모두 소실되었으므로, 더 이상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였다. 그때 할아버지들은 석축부분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국보 1호로의 존치를 고집했다.

 

숭례문 복원과정에서 관리번호에 지나지 않는다던 국보 1호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복원기간내내 문화재청은 전수가 끊어진 전통기술로 국보1호의 복원에 임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통기술에 대한 무리한 집착은 결국 숭례문 복원을 전통기술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부실복원 논란에 사로잡힌 숭례문을 보며 다시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한다. 노무현이 가고 없는 지금 누가 언제 또 다시 국보 1호 숭례문을 정면 조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2013년의 대한민국을 보면 나는 할아버지들을 존중해서 아니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꺾었던 바보 노무현을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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