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칼럼

 

나의 작은 워터루 전투 - 기생 명월이 생식기 표본 소송에 지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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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일본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 가서 명월관 기생 홍련의 그림 앞에서 애도하는 모습. 홍련은 국과수 인체표본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나는 패배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다. 처음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이번에 걸어가는 나의 패배는 반드시 모두의 승리로 이어질거라고

 

나는 어릴때 좋아했던 아바의 워털루란 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바의 히트곡 워터루는 패배가 승리로 이어진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세계에 알린 프랑스 혁명의 끄트머리, 프랑스 혁명의 마무리는 나폴레옹이 워터루 전투에서 패함으로 끝났다.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622일 영국군함 벨레로폰(Bellerophon)호에 실려 대서양의 외딴 섬인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 Island)로 유배되었다. 그의 패배는 프랑스 혁명의 종말이고, 유럽은 비인체체로 돌아갔지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결국 제정(帝政)시대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워터루 전투는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났지만, 역사는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젖힌 셈이었다.

 

국과수가 소장한 이른바 기생 명월이 생식기 표본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스런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냥 놔 두시지요, 스님이 기생 아랫도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세상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기 십상입니다.”

    

망측한 일이었다. 몇 번에 걸쳐 나 역시 심사숙고 하고 조용히 넘어 가려 했다. 그러나 불행한 삶으로 얼룩진 한 여인에 대한 생각이 끝끝내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급기야 몇날 며칠을 꿈속으로 찾아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세상의 밑바닥에서 노리개로 살은 여인도 인간이 아니겠느냐고, 기녀라는 이유로 표본으로 만들어져 농락당해도 좋은 것이냐고, 해방된 지 70년이 되가는 때까지도 아무도 자기를 풀어주지 않는다며 울먹거렸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한명의 종교가로서 부끄러워 졌다.

    

옳지 않은 일을 보고도 왜곡된 비난이 두려워 외면하는 것은 승려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나는 노스님께 찾아가 이런 사항을 상의드렸다.이상한 소리한다고 야단 맞을 줄 알았던 내게 노스님께서는 뜻밖에 용기를 주셨다.

    

일본놈이나 한국놈이다 다같이 나쁜 놈들이구만, 제나라 처녀가 일본놈들 손에 농락당한 줄 알면서도 여태 그걸 보관하고 있었데? 네가 가서 혼 좀 내줘라

    

그 말씀에 나는 용기를 얻어 서울중앙지법에 여성생식기 표본 보관금지 청구의 소를 접수했다. 2010117일의 일이었다.

    

소송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슨 중놈이 기생 생식기에 관심이 많느냐는 비난, 위자료 청구 부분에 관해서는 돈에 눈먼 중이란 비난이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법률가들에게도 호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인권침해적 요소는 인정하지만, 유족이 아닌 입장에서 표본의 처분을 주장할 당사자 적격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나는 당당히 말했다.

    

인간의 존엄성에 도전한 반인륜적 행위에 인간이면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진실과 정의에 입각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떤 부조리와도 싸우겠습니다. ”

    

나는 재판이란 형식속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 혹은 특수한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이 표본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재판은 언론에 관심을 얻었고, 국과수의 현장검증을 통해 만천하에 표본의 실체가 드러났다. 표본은 의료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가학적 행위에 의해 난도질되어 있었고, 여성의 자궁 전체를 들어낸 다소 끔찍한 모습이었다. 재판부도 끔찍한 모습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시민들의 제보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국과수는 이 표본을 공개적으로 진열해 놓았었고, 심지어 견학가서 구경했다는 남자 고등학교도 있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인간의 마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 끔찍한 표본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키득거려왔다는 놀라운 사실과 이제까지 아무도 표본의 반인륜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견학용으로 잘 있는 표본에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항의전화도 빗발쳤다.

    

재판부는 화해권고를 통해 파기할 것을 권고 했다. 그런데 검찰이 반발했다. 재판부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며, 화해권고에 이의신청을 했다. 그대신 자발적으로 표본을 파기했다. 그 뒤 나는 위자료 청구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국과수가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달라는 취지에서 단 1원의 위자료라고 받겠다고 대답했다.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때쯤의 나는 우리에게 내재한 마성(魔性)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든지 패배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재판부는 위자료에 대한 부분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나는 패배했다. 뜻밖에 패소에 관한 기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거기에는 비난의 소리와 칭찬의 소리가 섞여 있었다.

   

재판은 싸움의 여러 가지 방식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재판을 통한 승리 혹은 패배가 문제를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최소한 내가 무슨 취지에서 이길을 걸어갔는지 공감하는 사람이 나왔다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그들의 각성한 의식이 다시는 이땅에 이런 반인륜적 행위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것이란 확신이 선다.

    

오는 824일 내가 머무는 봉선사에서는 명월이 천도재를 지낼 예정이다. 이제야 안식을 찾게된 명월이의 한을 풀어주는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경술국치 100.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켜주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재판의 패배는 승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졌다고 해서 정말로 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작은 워터루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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